[디 애슬레틱] 손흥민이 곧 토트넘이고, 토트넘이 곧 손흥민이다

손흥민의 토트넘 커리어는 서울에서 막을 내렸지만, 그와 토트넘의 10년 여정은 빌바오에서 완성됐다.
그곳에서 그는 5월, 유로파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 한 순간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단숨에 납득시켰다. 모든 노력, 모든 헌신, 모든 골, 모든 눈물이 스페인 북부의 그 밤과 이어진 축하 속에서 비로소 정당해졌다.
그리고 바로 빌바오에서, 손흥민이 토트넘이 되었고, 토트넘 또한 손흥민이 되었다.
결승전 이전까지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은 당시 토트넘의 감독, 엔지 포스테코글루였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동기부여로 삼았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디 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손흥민을 유로파리그 여정의 중심에 둔 이유는, 그가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토트넘의 상징적인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물론 그는 뛰어난 선수지만, 그동안 결정적인 성공의 조각이 빠져 있었다”고 밝혔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선수들에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승리한다면, 손흥민은 물론 클럽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단번에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수들은 토트넘을 위해 뛰었듯, 손흥민을 위해서도 그렇게 뛰었다. 이제 손흥민과 토트넘 사이에는 더 이상 경계가 없었다.
선수와 클럽 사이에 그런 종류의 일체감을 보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손흥민은 북런던에서 보낸 10년의 시간 속에서 마침내 그 경지에 도달했다. 그것은 단순한 경기 결과로 얻은 것 이상의 깊은 성취이며, 조건 없는 사랑이다. 클럽과 그 공동체의 역사와 기억 속에서 손흥민의 자리는 깊고, 영원하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토트넘이 관심을 보였지만, 함부르크 시절 손흥민 영입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건 또 다른 잉글랜드 클럽이었다. 사우스햄튼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부임 몇 개월 만에 다음 시즌을 위해 공격진에 더 많은 스피드와 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사우스햄튼 스카우트 책임자였던 폴 미첼은 디 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손흥민은 우리가 선호하는 프로필에 딱 맞는 선수였다. 역동적이고, 전환 상황에 강하며, 양쪽 측면 모두에서 뛸 수 있고, 수직적인 움직임도 갖춘 선수였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공을 가졌을 때든, 그렇지 않을 때든 높은 압박과 빠른 템포의 축구를 원했고, 손흥민은 그런 스타일에 완벽히 부합하는 자원이었다”고 회상했다.
2013년 여름, 손흥민 영입전의 가장 앞줄에 있었던 건 토트넘이 아니라 사우스햄튼이었다. 하지만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에 도전할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잔류를 택했다. 독일에 남은 그는 바이엘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포체티노 감독은 2014년 여름 사우스햄튼을 떠나 토트넘 지휘봉을 잡았다. 6개월 뒤, 폴 미첼도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화이트 하트 레인에 젊고 재능 있는 팀을 꾸려가고 있었지만, 결정력을 더해줄 자원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떠오른 이름이 손흥민이었다. 당시 레버쿠젠에서 뛰고 있던 손흥민은 포체티노가 추구하던 강한 압박 중심의 축구 스타일과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선수였다. “우리는 손흥민이 우리 팀의 원칙과 얼마나 잘 맞는지를 절대 잊은 적이 없다”고 미첼은 회상했다.
손흥민이 뛰던 팀이 강한 활동량과 압박을 중시했다는 점도 중요했지만, 그의 체력적 안정성 또한 큰 강점이었다. 레버쿠젠에서 보낸 2시즌 동안 손흥민이 결장한 건 94경기 중 단 네 차례뿐이었고, 그마저도 모두 A매치 차출이나 징계에 따른 것이었다.
2015년 2월, 토트넘은 스카우트를 레버쿠젠에 보내 볼프스부르크전을 지켜보게 했다. 전반전은 케빈 더 브라위너와 바스 도스트가 레버쿠젠 수비를 무너뜨리며 3-0으로 앞선 볼프스부르크의 일방적인 흐름이었다. 그러나 후반전은 손흥민의 무대였다. 첫 골은 디에고 베날리오 골키퍼의 손에서 공을 빼앗아 그대로 밀어 넣었고, 두 번째 골은 롱패스를 따라 전력 질주한 뒤 침착하게 트래핑해 오른발 바깥쪽으로 베날리오를 넘겼다. 해트트릭을 완성한 장면은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파고든 뒤, 왼발 슈팅으로 혼전 상황 속에서 골문 구석을 정확히 찔러 넣은 골이었다.
그날 레버쿠젠은 4골을 넣은 도스트에 밀려 4-5로 패했지만, 토트넘은 이미 충분히 확인했다. 구단에 전달된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단순히 해트트릭뿐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는 손흥민의 비가시적인 장점들이 담겨 있었다. 골문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침착함, 공격 지역에서의 효율적인 움직임, 양발 활용 능력은 물론이고, 어느 쪽에서든 예상치 못한 타이밍과 방향으로 슈팅을 날리는 독특한 결정력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토트넘은 당시 웨스트브롬위치의 공격수 사이도 베라히노에게도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레버쿠젠 감독 로저 슈미트와 손흥민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그게 우리에게 작지만 결정적인 기회가 됐다”고 당시 영입을 주도한 미첼은 회상했다. “우리는 이미 모든 사전 조사를 마친 상태였고, 스타일과의 궁합도 확인해둔 터라 아주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실제로 손흥민의 영입이 성사된 날, 일부 토트넘 직원들은 급하게 그의 이름을 검색하느라 분주했다고 한다.
2015년 8월 28일, 손흥민은 2,2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토트넘에 합류했다. 당시 영입을 주도했던 미첼은 여전히 그 계약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 금액에 그런 수준의 선수를 영입한 건, 우리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투자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케빈 비머는 아직도 손흥민의 토트넘 첫날을 기억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수비수인 비머는 그해 여름 초 쾰른에서 토트넘에 합류했는데, 쾰른은 레버쿠젠의 지역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이 만남은 오랜 우정의 시작이 됐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비머는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첫날부터 늘 웃고 있었다. 내가 독일어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유독 잘 통했다. 단번에 느껴졌다. 정말 성격 좋은 사람이구나, 하고. 처음부터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굉장히 친절했다.”
그해 여름, 토트넘은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팀은 점점 나아지고 있었고, 분위기에도 생기가 돌았다. 포체티노 감독과 미첼은 새 감독과 동료를 위해서라면 벽이라도 뚫고 달릴 듯한 배고픈 젊은 선수들을 모아 하나의 팀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후 손흥민이 힘겨운 첫 시즌을 보내게 됐다는 점을 떠올리면, 처음은 의외로 순조로워 보였다는 게 놀라운 부분이었다.
9월 17일, 토트넘은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카라바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그날 밤 손흥민과 19세의 델레 알리는 나란히 구단 소속 두 번째 선발 출전을 기록했다. 마치 토트넘의 미래를 엿보는 듯한 순간이었고, 손흥민은 그 중심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는 안드로스 타운센드의 코너킥을 가볍게 마무리하며 선제골을 터뜨렸고, 몇 분 뒤에는 델레와 주고받은 완벽한 패스를 마무리하며 두 번째 골까지 기록했다. 사흘 뒤 프리미어리그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도 선발로 나선 그는 왼쪽 측면을 돌파해 결승골을 만들어냈다. 분데스리가 시절의 손흥민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는 거짓된 희망에 불과했다.
1주일 뒤, 손흥민은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족저근막을 다쳤다. 발바닥 아래쪽에 위치한 중요한 조직이 손상된 것이다. 이 부상 이후 데뷔 시즌은 완전히 꼬이기 시작했다. 두 달 가까이 선발 출전이 없었고, 다시 골을 넣은 것도 크리스마스 이후였다. 중요한 리그 경기에서 포체티노 감독은 해리 케인의 뒤를 델레, 에릭 라멜라, 크리스티안 에릭센으로 꾸리는 걸 더 선호했다. 손흥민은 그해 9월 부상 이후 리그에서 단 10경기만 선발로 나섰고, 그중 3경기는 시즌 막판, 토트넘의 우승 경쟁이 사실상 끝난 뒤 레스터 시티가 깜짝 챔피언에 오른 시점이었다.
그 시즌 후반기 내내 팀 안팎에서 던져졌던 가장 큰 질문은 손흥민이 경기에 나서느냐보다, 과연 축구 자체를 즐기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9년이 지난 지금, 이 시기를 두고 당시의 기억은 엇갈린다. 당시 영입을 주도했던 미첼은 “그는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늘 밝은 미소로 훈련장에 들어섰고, 열심히 훈련했다. 우리가 보기엔 포기할 생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보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구단 내부에는 손흥민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고, 훈련 태도 역시 기대에 못 미친다는 우려도 있었다. 선발 자리를 되찾기 위한 경쟁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는 시선도 존재했다.
2016년 8월, 손흥민은 올림픽 대표팀 일원으로 브라질에 다녀왔다. 토트넘으로 복귀했을 때, 그의 앞에는 독일 복귀라는 선택지가 놓여 있었다. 베르더 브레멘이 관심을 보였고, 실제로 이적 제안도 들어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손흥민은 이미 분데스리가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바 있었고, 커리어를 위해 이적을 택하는 데 망설임이 있던 선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손흥민의 마음은 기울어 있었다. “당시 정말 떠날 뻔했다”고 그는 2019년 런던 이브닝 스탠다드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포체티노 감독의 사무실로 찾아가서 불편한 마음이 들고, 독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다행히 토트넘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1년 전 그를 영입하는 데 2,200만 파운드를 투자한 만큼, 내부에 다소 회의적인 시선이 있었더라도 헐값에 보내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구단의 축구 운영진은 손흥민의 잠재력을 알고 있었다. 그런 속도와 기술, 다재다능함, 태도를 모두 갖춘 선수는 흔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대체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포체티노 감독은 손흥민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설득에 나섰다. 팀 내 입지를 되찾기 위해 남아 싸우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포체티노는 훗날 자신의 저서 『브레이브 뉴 월드』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손흥민에게도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출전 기회를 얻으려면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힘겨운 시즌을 보낸 뒤 그는 떠나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가 내 계획 안에 있는 선수이고, 헐값에 보내지 않을 거라고 전했다. 결국 그는 잔류를 선택했다.”
손흥민의 미래가 불확실했던 데다, 8월 초까지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해 있었던 탓에 그는 시즌 초반 토트넘의 구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한 구단 관계자의 표현대로, “사실상 양발을 문밖에 내디딘 상태”였던 선수를 중심에 두고 시즌을 설계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손흥민은 8월 말 A매치 휴식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예선 두 경기 중 한 경기에만 출전한 뒤 곧바로 잉글랜드로 복귀했다. 복귀 후 훈련에서 보여준 컨디션은 눈에 띄었고, 이를 지켜본 포체티노 감독은 코치진에게 “다음 리그 경기에서 무조건 손흥민을 선발로 내보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 경기는 9월 10일, 스토크 시티와의 원정이었다.
그 선택은 적중이었다. 손흥민은 폭발적인 움직임을 선보이며 두 골을 기록했고, 두 번째 골은 박스 바깥에서 감아 찬 슈팅이 골문 구석으로 꽂히는 멋진 장면이었다. 그는 해리 케인의 득점까지 도우며 팀의 4-0 완승을 이끌었다.
어떤 의미에서든, 이 경기가 손흥민의 진짜 토트넘 커리어의 시작이었다.
2주 뒤에는 미들즈브러를 상대로 두 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이끌었고, 이어진 챔피언스리그 원정에서는 CSKA 모스크바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렸다. 그리고 5일 뒤, 펩 과르디올라가 이끄는 맨체스터 시티가 화이트 하트 레인을 찾았다. 케인이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손흥민은 ‘가짜 9번’ 역할로 선발 출전해 시티 수비를 완전히 흔들었고, 토트넘은 2-0 완승을 거뒀다. 이날 경기에서 손흥민과 토트넘은 자신들이 얼마나 강력한 팀이 될 수 있는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그렇다면 과연, 진짜 의심의 여지가 있었을까?
당시 영입을 주도했던 미첼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비판이 따랐고, 우리는 그 소음을 인내하며 받아들여야 했다. 그건 당시로선 타당한 평가였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확신이 있었다. 분데스리가에서 보여준 모습들을 지켜봤고, 그의 기량을 알고 있었으며, 훈련장에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역동적인지, 얼마나 영리한지, 양발로 얼마나 완성도 높은 마무리를 하는지 모두 봤다. 우리는 확고했다. 손흥민은 반드시 정상급 선수가 될 거라고.”
돌이켜 보면, 손흥민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그가 2015년 여름 토트넘에 합류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언젠가 독일을 떠나 프리미어리그에 도전하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훨씬 더 의미 있었던 건, 2016년 여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단 한 시즌의 어려움 끝에 토트넘을 떠날 생각까지 했던 손흥민이 결국 잔류를 선택하고 성공을 이뤄냈다는 사실은, 훨씬 더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궁극적인 성공을 결정지은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 선택 이후 손흥민도, 토트넘도 수년간 그 결실을 함께 누리게 됐다.
손흥민의 전성기에서 놀라운 점은, 그 시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됐느냐는 것이다.
그 전성기는 2016년 가을부터 시작돼 최소 6년,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8년 가까이 이어졌다.그 기간 동안 손흥민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격수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손흥민의 전성기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두고 새롭게 덧붙일 말은 거의 없다. 단순히 빠르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물론 최고 속도로 질주할 때 그를 따라잡을 수 있는 수비수는 거의 없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움직임이 탁월했던 것도 분명하지만, 사실상 오프사이드를 무력화시키는 타이밍 감각은 그 이상이었다. 마무리 능력도 뛰어났지만, 매 시즌 기대 득점 수치를 큰 폭으로 초과했던 건 해리 케인보다도 손흥민이 더했다. 양발잡이였다는 점 역시 그의 무기였지만, 그를 영입했던 폴 미첼은 “평생 손흥민보다 양발을 더 잘 쓰는 선수는 본 적이 없다”고 단언할 정도였다.
이 모든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며, 손흥민은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엔지니어링의 산물처럼 느껴졌다. 왼쪽 측면을 질주하다가 전속력으로 몸을 열고, 반대편 골문 구석을 향해 감아차는 동작은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럽고 우아했다. 그리고 그 순간, 손흥민에게는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불가피함이 감돌았다. 그것은 경기장에 있는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토트넘 벤치에 있는 이들까지도 포함해서.
“특히 프리미어리그에서 그의 포지션을 소화한 선수들을 생각해 보면, 손흥민이 기록한 골과 어시스트 수치는 정말 놀라웠다”며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말했다. “그는 측면 선수 중에서도 최고의 마무리 능력을 지닌 선수였다. 지난해에도 손흥민이 왼쪽에서 돌파해 골키퍼를 넘어 골문 구석에 공을 꽂는 순간이 있었는데, 공을 차기도 전에 이미 골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손흥민의 가치는 단순한 화려함이나 기록(프리미어리그 127골로 공동 16위에 올라 있다)을 넘어선다. 토트넘에서 그가 보여준 가장 큰 강점은 바로 득점의 중요성에 있었다.
포체티노 감독 시절 전성기에는 구단 내에서 세 명의 ‘넘버원’ 선수가 있다고 여겨졌다. 한 명은 최고의 골잡이 해리 케인, 또 한 명은 빅매치를 터뜨릴 수 있는 독특한 재능의 델레 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흥민이었다. 손흥민은 특히 어려운 경기와 중요한 순간에 터지는 골, 즉 선제골과 결승골을 넣는 데 탁월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손흥민의 골들을 떠올려보면, 그 중요성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첫 시즌, 토트넘이 챔피언스리그 진출과 상위권 진입을 노리던 와중에 터진 왓포드전 89분 결승골. 2017년 챔피언스리그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기록한 승부를 가른 골. 2019년 같은 팀과의 16강 1차전에서 터뜨린 선제골. 그해 봄,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첫 공식 경기에서 기록한 클럽 역사상 첫 골. 그리고 그로부터 6일 뒤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터진 결승골까지.
무엇보다도 손흥민의 최고의 경기력은 토트넘이 에티하드 스타디움으로 원정 가서 한 골 차 리드를 지키려 할 때였다.
맨체스터 시티는 경기 시작부터 토트넘을 몰아붙이며 이미 합계 점수를 동점으로 만들었다. 그러던 7분경, 박스 바깥쪽에 떨어진 흘러나온 공을 손흥민이 잡았다. 첫 터치, 오른발로 에데르송 골키퍼의 다리 사이를 빠져나가는 슈팅이 그대로 골로 연결됐다. 2분 후, 루카스 모우라가 오른쪽을 뚫어낸 뒤 에릭센이 손흥민에게 패스를 연결했고, 손흥민은 순수한 천재성을 발휘했다. 카일 워커를 등진 채 완벽한 첫 터치로 몸을 열고, 공을 반대편 골대 구석으로 강력하게 감아 찼다.
손흥민의 모든 장점이 그 순간에 집약됐다. 치밀하고 우아하며, 최고의 긴장감 속에서 터져 나온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그 이후에도 손흥민은 더욱 성장했고, 결정력도 한층 강화됐다. 2020년 2월 아스톤 빌라전에서는 부러진 팔을 이끌고 두 골을 터뜨렸는데, 그중 극적인 추가 시간 결승골이 승리를 확정지었다. 같은 해 가을, 팬 없이 열린 홈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와 아스날을 각각 2-0으로 꺾었을 때도 손흥민이 선제골을 책임졌다.
손흥민의 최고의 시즌은 2021-22시즌이었다. 그 해는 누누 에스피리투 산투 감독 시절 손흥민이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터뜨린 첫 골로 시작됐고, 시즌 말미에는 안토니오 콘테 감독 아래서 토트넘이 아스날을 제치고 4위를 확정짓는 과정에서 마지막 10경기에서만 12골을 기록하는 폭발력을 보여줬다. 시즌을 23골로 마무리한 손흥민은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공동 수상했다.
토트넘 팬들마다 각자의 손흥민 최고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2023년 4월 브라이튼과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 100번째 골을 넣으며, 역대 34번째로 100골 고지에 오른 기념비적인 순간을 맞았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손흥민의 절친이자 오랜 팀 동료인 벤 데이비스가 자신의 집에서 저녁 파티를 열었다.
벤 데이비스와 케빈 비머뿐만이 아니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함께 뛴 수많은 동료 선수들과 깊은 유대감을 쌓아왔다. 그 이유를 이해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다.
2022년 프리시즌을 맞아 토트넘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모든 선수단과 스태프는 숙소에 도착해 손흥민이 준비한 각자의 맞춤형 선물을 받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지난해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투어에 참가한 모든 이들이 손흥민의 개인 브랜드 제품을 선물로 받았다. 당시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도 모자, 반바지, 티셔츠, 세면도구 세트를 받았다. 그는 선수단에게 손흥민의 뜻깊은 마음가짐을 꼭 전해주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었기에, 나는 늘 선수들에게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반드시 성과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전했다. “손흥민은 굳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였지만, 그의 너그러움 덕분에 선수들도 그 의미를 깨달았다. ‘받는 것만큼 돌려주는 것’이 성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항상 그렇게 베풀고 또 베풀었다. 뛰어난 커리어와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잣대라는 점을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 보여준 훌륭한 본보기였다.”
손흥민은 투어 중 팬들로부터 받은 많은 선물들을 소중히 여기며, 한 분 한 분에게 꼭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받은 선물들은 모두 차곡차곡 밴에 실어 고향으로 가져갔다.
손흥민은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
손흥민은 토트넘에 처음 합류한 몇 달 만에 훈련장에서 선수단과 스태프를 위해 큰 한국식 연회를 직접 주최하고 비용을 부담하기도 했다. 또 훈련 후에는 항상 비머를 집으로 초대해 어머니가 팀 동료를 위해 음식을 준비할 수 있게 했다. 비머는 “그의 어머니는 정말 따뜻한 분이었다. 마치 나를 자신의 아들처럼 챙겨주셨다”고 회상한다.
손흥민이 매일 조금씩 베푸는 작은 친절의 행위들도 빼놓을 수 없다. 팬들을 만나고, 영상을 찍어주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훈련장에 남아 사인을 해주는 등, 팬들의 하루를 밝게 해주기 위해 늘 노력한다. 손흥민을 아는 사람이나 함께 일해본 이들은 누구나 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그들의 안부와 가족 이야기를 챙기는 모습을 똑같이 전한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지 않았던 이들에게도 예기치 않게 안부 메시지가 오가며, 본인과 가족을 살피는 마음을 전한다.
그래서 손흥민을 아는 이들은 말한다. 축구 선수로서의 뛰어남도 놀랍지만, 한 사람으로서 그가 더욱 감탄을 자아낸다고. 수백만 명의 팬들에게 우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일부로 여기며, 한 명 한 명에게 소중한 시간을 내어준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그는 보이는 그대로의 사람이다. 종종 대중이 한 사람을 보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은 크게 다를 때가 있다. 하지만 손흥민은 달랐다. 대중이 바라보는 모습과 그의 사적인 모습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손흥민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한 가지는, 그의 커리어 대부분이 마치 금붕어가 갇힌 어항 안에 살 듯 늘 주목받아 왔다는 점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뜨거운 관심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을 한 명도 찾기 힘들다는 사실이 더더욱 그렇다.”
2016년 여름 토트넘을 떠나지 않기로 한 선택이 손흥민을 만든 계기라면, 4년 후 또 한 번의 결정이 그의 전설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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