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나라] '케냐 간 세끼'로 넷플릭스 입주한 나영석, 그 익숙함의 전략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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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12:24
"과감하게 시도한 새로운 콘텐츠는 절대 아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케냐 간 세끼' 제작발표회에서 나영석 PD가 던진 이 말은 이번 프로젝트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글로벌 OTT와의 첫 협업이라면 '파격'과 '혁신'을 기대할 법하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 시청자에게 익숙한 문법을 선택했다. 이는 나 PD의 의지이자, 넷플릭스가 요청한 방향이기도 했다. "모든 프로그램이 새로울 필요는 없다"는 의견 아래, 넷플릭스는 오히려 한국 시청자들이 편히 즐기던 스타일의 예능을 원했다.
'케냐 간 세끼'의 출발점은 2019년 '신서유기7'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레트로 레이싱 게임 우승으로 얻은 소원권에 '기린 호텔 숙박권'이 적혀 있었고, 팬데믹으로 흐지부지됐던 그 장면은 결국 6년 만에 넷플릭스를 통해 실현됐다. 출연진조차 "십오야 콘텐츠 정도일 줄 알았다가 넷플릭스 방영 소식에 놀랐다"고 말했을 정도로 예상 밖의 확장이었다. 은지원은 "(우리 프로그램 때문에) 한국 망신 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농담은 이들의 솔직한 심경을 대변한다.
프로그램의 틀은 '신서유기'와 '아이슬란드 간 세끼'를 그대로 잇는다. 먹을거리 체험과 게임 중심의 구성, '이어 말하기' '좀비 게임' 같은 익숙한 코너가 케냐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새로움보다는, 오랜만에 다시 뭉친 조합이 주는 케미(와 일상적인 투닥거림)가 핵심 동력이다. 웃기는 맏형 이수근은 여전히 예측불허의 입담을 자랑하고, 우기기의 아이콘 은지원은 유독 안 풀리는 게임 탓에 화를 참지 못한다. 케냐 도착과 함께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탓에 '조비관'으로 전락한 규현이 만들어내는 조합은 비록 완전체가 아니라 해도 '신서유기' 특유의 기운을 충분히 살려낸다.
다만 글로벌 플랫폼이라는 환경이 의외의 제약으로 작용하는 것도 흥미롭다. 음악 저작권 규정이 까다로운 넷플릭스에서는 이수근의 즉흥 노래조차 경계의 대상이 된다. 첫 화에서 나 PD에게 주의를 받은 이수근은 즉석 창작곡으로 빈틈을 메운다. 당시 잃어버린 휴대전화 생각에 한껏 비관 모드에 돌입한 규현을 주인공으로 한 노래다. "내 마음을 뺏어 가라 했는데~ 왜 내 폰을 뺏어 갔나요~" 이런 장면들은 오히려 새로운 재미를 구축하지만, 반대로 음악 퀴즈나 다양한 BGM을 활용하던 나영석표 예능의 무기들이 제한된다는 아쉬움도 남긴다.
그럼에도 나 PD는 넷플릭스 진출의 의미를 분명하게 짚는다. "제일 잘 나가는 백화점"인 넷플릭스에 "오래된 좋은 가게"인 자신들이 입점해 전 세계 구독자들에게 "한국에서 이런 예능을 즐기고 있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고 싶었다고. 이는 단순한 해외 진출이 아니라 한국식 예능의 가능성을 세계 시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묻는 실험이기도 하다. 한국 시청자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장면들이지만, 해외 시청자에게는 생경한 포맷이기에 충분히 신선할 수 있다.
사실 나 PD의 넷플릭스 진출은 개인의 도전을 넘어 업계 전체의 흐름을 보여준다. 드라마만큼 제작비를 쏟지 않아도 기획력만 좋으면 성과를 낼 수 있는 예능은 방송국은 물론 OTT 플랫폼에서도 '가성비 좋은 장르'로 꼽힌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가 올해부터 미드폼 예능을 요일별로 고정 편성하고, 검증된 IP와 유명 제작진 영입에 적극적인 이유다. 아울러 제작사 입장에서도 OTT는 매력적인 통로다. 콘텐츠가 전 세계 시청자에게 동시 도달하며 글로벌 팬덤을 형성하고 다양한 수익 모델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영석 PD가 '새로움' 대신 '익숙함'을 택한 건 역설적으로 가장 현명한 선택일지 모른다. 오래 사랑받아온 포맷, 시청자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멤버들의 조합은 어느 시장에서도 기본 이상의 재미를 보장한다. 실제로 '케냐 간 세끼'는 공개 이틀 만에 한국 넷플릭스 1위, 홍콩·싱가포르·대만 등 아시아권 전역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촬영지인 케냐까지 톱10에 오르며 빠르게 존재감을 증명했다. 빠른 편집과 자막이 많은 '코리안 스타일'을 굳이 완화하지 않고 그대로 내세운 전략 또한 글로벌에서 통했다.
16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케냐의 대자연 속에서도 세 명의 '바보들'은 여전히 말장난과 게임으로 웃음을 만든다. 그리고 그 익숙한 풍경을 통해 나영석 PD는 오래된 명제 하나를 다시 확인시킨다. 가장 한국적인 예능일수록, 세계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