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나라] '테토남'도 예외 없다…40대 남성 4명 중 1명, 팔 다리 가늘어지는 '이 병'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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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 13:20
세종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박모(54)씨는 한때 직장에서 ‘에너자이저’로 통했다. 주말마다 등산과 자전거 타기를 즐겼고, 잦은 야근도 거뜬했다. 그랬던 그에게 얼마 전부터 이상신호가 찾아왔다. 박씨는 “별다른 일도 없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퇴근길에 우울감이 쏟아지는 날이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나이 탓이겠지’ 하고 넘겼지만, 몸의 변화는 정직했다. 땀이 많아지고 피부는 푸석해졌다. 단단하던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만 볼록해지는 ‘거미형’ 체형으로 변해갔다. 결국 병원을 찾은 그가 받아 든 진단명은 ‘남성 갱년기’였다.
워낙 천천히 진행돼 치료 놓치기도
갱년기는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지만, 남성도 세월의 흐름을 비켜갈 수는 없다. 의학적으로 ‘후기발현 성선기능저하증’이라 불리는 남성 갱년기는 나이가 들며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부족해져 발생하는 질환이다.
여성 갱년기가 폐경을 기점으로 급격히 찾아오는 것과 달리, 남성 갱년기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진행된다. 테스토스테론은 20대 초반 정점을 찍은 뒤 30대부터 매년 약 1%씩 감소한다. 50~70대에 이르면 20대 대비 30~50% 수준까지 떨어지는데, 이 과정이 워낙 점진적이어서 단순한 노화나 업무 스트레스로 치부하다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1일 대한남성과학회에 따르면 남성 갱년기 유병률은 40대 24.1%, 70대 이상은 44.4%에 달한다. 남성성이 강해 소위 ‘테토남(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남성)’이라 불리던 이도 예외는 아니란 얘기다. 테스토스테론은 몸의 근육을 유지하고 지방을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 호르몬이 줄면 근력과 근육량이 감소하고 내장지방이 쌓인다. 박씨처럼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만 나오는 체형 변화가 생기는 주된 이유다. 안면 홍조와 식은땀, 탈모, 피부 노화도 동반될 수 있다.
정신적 타격도 크다. 호르몬 저하는 뇌 기능에도 영향을 미쳐 기억력과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이유 없는 무기력감, 불안, 우울, 분노 조절 장애가 나타나고, 불면증에 따른 만성 피로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이형래 강동경희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남성 갱년기를 방치하면 우울증과 수면장애로 이어져 삶의 만족도가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며 “단순한 기분 탓으로 넘기지 말고 초기 증상을 예민하게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테스토스테론 3.5ng/mL 미만은 갱년기
문제는 자칫 모르고 넘길 수 있는 갱년기가 만성질환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남성호르몬 감소를 방치할 경우 대사증후군 위험이 커진다. 지방 분해 능력이 떨어지는 탓에 고지혈증과 당뇨병, 고혈압 위험이 상승하고, 이는 결국 심혈관계 질환으로 이어져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뼈가 약해져 골다공증과 골절 위험이 증가하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2019년 분당서울대병원‧울산대 공동연구진이 2006~2015년 건강검진을 받은 국내 성인 남성 6,967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혈중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1ng/mL 높아지면 대사증후군 위험이 13%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민구 고려대 안암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남성 갱년기는 노화 과정 중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흔한 질환이지만, 이를 방치하면 건강 수명(질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남성 갱년기가 의심된다면 비뇨의학과를 찾아 혈중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이때 주의해야 할 건 검사 시간이다. 남성호르몬은 하루 중 변동 폭이 크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확인하려면 농도가 가장 높은 오전 7~11시에 채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반적으로 혈중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3.5ng/mL 미만이면 갱년기로 진단하며, 3.0ng/mL 이하일 경우 적극적인 치료가 권장된다. 치료는 주사제나 바르는 약으로 부족한 호르몬을 채워주는 남성호르몬 보충요법이 주를 이룬다.
근력운동이 남성호르몬 생성 촉진
다만 치료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안전 장치가 있다. 전립선암 판단 지표인 전립선 특이항원(PSA) 수치다. 남성호르몬은 전립선암을 유발하지는 않지만, 초기 전립선암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남성호르몬을 투여하면 호르몬 자극을 받은 암세포가 급격히 증식할 수 있어서다. 따라서 치료 시작 전 PSA 검사로 전립선암이 없음을 확인하고, 치료 중에도 주기적인 혈액 검사로 이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하지 않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혈색소(헤모글로빈) 수치가 올라 혈액이 끈적해지는 ‘적혈구 증가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혈액 점도가 높아지면 혈전(핏덩어리) 생성 위험이 커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외부에서 호르몬을 주입하면 고환의 정자 생성 기능이 일시적으로 떨어질 수 있으므로 자녀 계획이 있는 남성은 치료를 미루는 게 좋다.
병원 치료만큼 중요한 것이 생활 습관 교정이다. 특히 허벅지처럼 큰 근육을 사용하는 하체 위주의 근력 운동이 효과적이다. 근육을 단련하면 뇌를 자극해 남성호르몬 생성이 촉진된다. 아연과 셀레늄, 비타민D가 풍부한 굴과 게, 새우, 마늘도 남성호르몬 생성에 도움을 준다. 박 교수는 “나이 들어 나타나는 증상이겠거니 무시하지 말고, 남성 갱년기를 적극 관리하면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