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전선에 올인했던 김일성, 인천은 비어 있었다.


1950년대 김일성
김일성은 항일 빨치산 중대장 출신으로, 실제 전투 경험이라 해봐야 백 명 남짓 지휘해 본 게 전부였다. 해방 후엔 소련군 88여단에서 대위 계급 달고 있었고, 그 커리어 그대로 북한 수뇌부에 앉은 거다. 그런 김일성이 6·25 전쟁이 터지자 낙동강 전선 돌파에 뇌근육을 풀가동해 버린다.

린뱌오(林彪)
인천에 상륙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린뱌오(林彪) 같은 전략가들이 “서울과 제일 가까운 항구는 인천이다”라며 경고했고, 저우언라이(周恩來)도 김일성한테 “인천 조심해라”는 전문까지 보냈지만, 김일성은 "내가 맞다"는 확신에 찬 채로 씹고 아무런 대비도 안 했다.
결국 기껏 인천 방어하려고 확보한 육군 병력조차 죄다 낙동강 전선으로 보내버리고 만다. 그리고 날려먹는 삽질을 해버리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9월 공세 준비하면서 병력과 장비가 모자라자 경기 일대에 배치돼 있던 방어 부대까지 싹 빼다가 남쪽으로 내린 것

인천 상륙 작전 다음 날 인천항의 레드 비치에서 4대의 전차상륙함(LST)이 미군의 인력과 장비를 내리고 있다.
그렇게 인천 일대는 그냥 텅 비었고, 1950년 9월 15일 새벽, 유엔군이 월미도에 상륙할 당시 월미도를 방어하던 북한군 병력은 해안포 부대와 경비대 등 소수의 병력뿐이었다. 상륙 작전 당시 실질적으로 인천 일대를 방어할 수 있는 병력은 해안 경비대와 일부 예비 병력을 포함해 2개 중대 규모에 불과했다.
거기다 수도권 방어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북한군 제18사단마저 김일성의 명령 따라 낙동강 전선으로 내려가면서, 서울이고 인천이고 거의 무방비 상태가 돼버렸다. 정보 다 들어왔는데도 개무시해 버리고, 똥고집 하나로 삽질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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